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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네오플

새롭고 멋진 도전들을 전하기 위해 즐겁게 나눌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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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터뷰] 넥슨그룹 첫 정년퇴직자 백영진 의 소회 등록일 2022-01-11
제목 [인터뷰] 넥슨그룹 첫 정년퇴직자 백영진 의 소회
등록일 2022-01-11
Link https://www.inven.co.kr/webzine/news/?news=266901&site=df
내용

 

2021년 12월 28일, 네오플은 게임업계 첫 정년 퇴임식을 진행했다. 주인공은 \\\'던전앤파이터\\\' 서버를 만들어 온 백영진 개발자다. 그는 2005년 8월 던전앤파이터 개발 스튜디오 \\\'A-shock\\\'에 입사해 16년 5개월 동안 일했다. 그는 2021년 12월 31일 퇴직했다.

그동안 게임업계에선 정년퇴직으로 떠나기보다 권고사직으로 물러나는 소식이 많이 들렸다. 이번 백영진 개발자의 정년퇴직은 비교적 불안정했던 개발자 세계에 작은 울림을 준다. 네오플 관계자는 \\\"게임업계에 기념이 될만한 일, 큰 희망을 줬다\\\"고 말했다.

넥슨 첫 정년퇴직자 백영진 개발자로부터 소회를 들었다.




던파 유저들은 백영진 개발자의 작업물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요?

= 처음부터 던전앤파이터 게임의 서버개발을 맡아 진행해 왔습니다. 제가 네오플에 입사했던 시기는 막 던전앤파이터가 오픈베타를 시작했을 때였어요. 처음엔 던전앤파이터 서버의 기초가 되는 기본구조나 틀을 마련해야 했었고요.

초기 던전앤파이터의 서버 구조는 버그가 너무 많은 상태였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이중 접속을 차단하는 것이 저의 첫 임무였으니까요. 그렇게 이중접속 차단 시스템을 제작했죠. 이후 던전앤파이터는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나서 당시 중,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상당한 인기몰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접속자는 5만을 넘지 못했어요. 다시 말씀드리면 유저들이 접속하고자 해도 접속이 안 되었던 거죠. 던파 서버 문제 때문에요.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저의 임무였고, 해결하고 나니 동시접속자 수 10만을 훌쩍 넘어가더군요.

물론 10만 명을 넘을 때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 보니 던파의 초창기 별명이 \\\'점검앤파이터\\\'였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서버가 죽어서 점검해야 했으니까요. 물론 기획자들이 쏟아내는 콘텐츠 기획을 개발해야 했고, 일주일 단위로 패치는 병행해야 했었습니다. 지금 던파 개발시스템은 너무나 많은 발전을 해서 과거와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긴 합니다.

답변이 되었을지 몰라서 대표적 콘텐츠 몇 가지를 말씀드리자면 던전앤파이터 길드 시스템, 많은 이벤트, PC방 시스템, 욕설 필터링 시스템, 던전 EPLP, 아이템 GUID, 전직 및 각성 시스템 등의 개발을 맡았습니다.


종종 던파 유저들이 렉으로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어요. 그때 서버에 대한 불만이 나오곤 하는데요. 서버개발자로서 렉이 왜 걸리는 건지 유저분들께 설명하신다면요?

= 온라인게임에서 렉이 발생하는 문제를 프로그램지식을 동원해서 유저분들에게 설명해서 이해시키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 같아요. 그래서 서버 입장에서 렉이라는 현상이 3가지 정도의 원인으로 발생한다고 보시면 이해가 빠르실 것 같습니다.

1. 개발자가 잘못 프로그래밍해서 어떠한 상황에 도달하면 과도한 프로세스를 타게 프로그래밍을 한 경우
2. 해킹 공격이 들어와서 네트워크 부하가 심해지는 경우
3. 많은 유저가 갑자기 동시에 접속을 해서 부하가 심해지는 경우

대부분 1번의 경우일 듯합니다만, 인기 있는 게임의 경우 간혹 2번, 3번의 경우도 발생합니다.

던파의 경우 접속이 안 되거나, 세리아방까지는 어째어째 들어 왔는데 마을로 안 나가진다거나, 채팅 메시지가 전달이 안 되다가 몇 초 후 전달되는 등, 파티 신청이나 수락이 한참 뒤에 된다든가 하면 서버렉이 발생한 것입니다.

던전에서 몹의 움직임이 느리다거나 화면상의 스크롤 등이 느려지거나 끊어지는 현상은 거의 대부분 클라이언트 렉이라고 보시면 되고요.


긴 경력 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을까요?

= 저에게는 참 많은 선배분이 있었습니다. 네오플에서 같이 근무한 동료분, 후배분들께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요. 그래서 정년퇴직으로 회사를 떠나는 것이 아쉽게 느껴 집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잊지 못할 저의 선배 한 분이 계십니다. 닷컴버블이 한창이던 2000년 첫 게임회사에 입사를 했더랬죠. 게임회사라기보다는 조그만 기업체였는데 사장님 아들이 게임을 좋아해서 게임회사를 만들어 기획하고, 그 기획서를 바탕으로 투자받아 운영을 했던, 닷컴버블 때나 가능했던 회사였습니다. 어찌어찌해서 게임을 만들긴 했지만, 회사는 자금 여력이 없어 망해 버리게 되죠.

저는 다시 그 게임개발 경력을 가지고 두 번째 게임회사에 지원하게 됩니다. 그 당시 제 나이가 40세였기 때문에 뭔가 게임개발 고수 같아 보였는지, 사장님은 저에게 임무 하나를 맡기게 되었죠.

게임개발 1팀은 탱크 게임을 서비스 중이어서 잘 나가고 있었지만, 개발 2팀은 신규 게임개발을 해 온 지 벌써 6개월이 지났지만 마땅한 결과물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 팀을 맡아서 문제점을 파악하고 팀을 정리하거나, 문제를 해결해 성공시키라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첫 게임회사에서 나름대로 출시할뻔한 게임을 혼자서 개발했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던 저는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그 팀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막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신입사원 남자 한 명과 여자 두 명이 팀을 이루고 있었지만, 남자 신입사원이 거의 모든 개발역량을 발휘해서 개발해 왔더군요.

남직원에게 그동안의 개발이력을 전달받아 분석하는데, 본인이 개발한 게임에 대한 이해도와 설명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설명을 어느 정도 듣고 그 프로젝트에 대해 이해하게 된 저는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전공자였던 저는 혼자 공부하고 연구하여 개발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어려움이나 개발 프로세스에 대해 매우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남자 신입 사원이 그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있다는 것을요.

남직원의 개발내용은 완벽했고, 오히려 제가 공부해서 배워야 할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이 남자 신입 사원을 쫓아낼 수가 있겠습니까? 결국 그렇게 둘 다 회사에서 쫓겨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분을 스승으로 모시기로 하고, 많은 일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지금 세상을 떠나 비록 함께 할 순 없지만, 그때 배운 지식이 저의 개발 자산이 되어 남아 있습니다.


처음 개발자로서 입문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합니다. 그 시절 개발 공부는 어떻게 했는지도요.

= 제가 PC게임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대학교 4학년 때 8비트 Apple II 플로피디스크 게임이었습니다. 80년대 초 대학생 시절에 지도교수가 해외연수 다녀와서 사가지고 온 Apple II는 캐비닛에 열쇠를 잠가두고 사용할 정도로 귀한 물건이었죠.

그러다 후배랑 같이 자취하게 되었는데, 이 후배 녀석이 Apple II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려 그 당시 50만 원짜리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도 가지고 있었죠. 후배가 수업이 있어 학교에 가면 저는 후배 몰래 Apple II 게임을 즐겼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저의 게임개발의 꿈이 시작되었던 것 같아요.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에 실패한 저는 삼촌이 공장을 물려준다는 약속에 구로공단(지금의 구로디지털단지) 내 한 공장의 정밀기계 앞에서 선반 작업을 하게 됩니다. 일주일 단위로 밤낮이 바뀌면서 온몸에 기름칠을 해가며 한 달에 10여만 원노동자가 되었더랬죠.

그 당시 월급여 10만 원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의 땀이 없었다면, 수출로 먹고사는 제조국 대한민국의 미래도, 지금의 게임산업, IT산업도 없었으리라 생각하고요. 그분들이 대한민국의 주인공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어느 날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과연 내가 하고 싶었던 꿈이 무엇이었는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청계천(지금은 용산이죠) 상가에 가서 Apple II를 구입하게 되었죠. 벌어 둔 돈이 없어 본체만 샀고 모니터는 TV에 연결했고요. Apple II 내 롬 안에는 베이직 언어가 심어져 있었는데, \\\'베이직 500제\\\'라는 책을 사서 하나씩 풀어나갔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니까 참 재미있더군요. 그래서 청계천 상가 내 Apple II를 산 컴퓨터 가게 사장님을 찾아가서 무조건 취업시켜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일주일을 찾아갔더랬죠. 일주일째 찾아가니까 사장님이 책을 한 권 주시는데 제목이 MS DOS였어요. 저는 그 책을 읽고 오면 취업시켜줄 거로 생각하고 달달 외워 다시 찾아갔습니다. 취업시켜 주더군요.

그때부터 청계천 상가에서 컴퓨터를 파는 점원이 되었습니다. 286 16bit IBM 컴퓨터부터 시작해서 흑백 허큘리스카드, CGA, EGA, VGA라는 그래픽카드도 팔았어요. 새 제품도 팔았지만, 중고제품도 새것으로 만들어 팔기도 했죠.

그 컴퓨터 가게에는 각종 플로피디스크 소프트웨어가 가득 있었는데, 당시에는 지식재산권 인식이 부족하던 시기다 보니 복사를 해서 장당 얼마에 팔기도 했었어요. 가게 입장에서는 짭짤한 수입원이었죠.

각종 언어부터 유틸리티, 통계, AI등등 저는 많은 소프트웨어를 접할 수가 있었습니다. 당시 학원에서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 코볼, 포트란을 가르쳤지만, 저는 C언어, 파스칼을 접할 수가 있었고요. 엑셀이나 워드프로세스, 데이터베이스를 접할 수가 있었죠.


넥슨 입사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 참 많은 일을 했더랬습니다. 잘나가는 컴퓨터 학원의 강사를 하기도 했는데, 어느 날 지도교수가 그 컴퓨터 학원에 찾아온 거예요. 네가 왜 여기 있냐고 하길래, 컴퓨터를 강의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컴퓨터 학원 원장님과 지도교수님은 대학 동기였어요. 지도교수님은 여름 방학 때 후배들을 가르쳐 보라고 했죠.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그랬더니 교수님이 토목 설계회사에 취업을 권하더군요. 제 전공이 토목이다 보니, 토목설계회사에 그렇게 근무하게 됩니다. 지도교수의 소개로 토목설계회사에 입사했더니 제가 했던 일이 컴퓨터 쪽이니까, 사장님이 토목을 전산화해 보라고 전산실을 만들어 주더군요. 각종 캐드 장비를 포함해서요.

하지만,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토목 쪽이 아니었기 때문에 3년간 근무 후에 독서실을 운영하게 됩니다. 독서실은 학생들이 밤에 와서 공부하기 때문에 낮에는 제가 공부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당시에는 MS DOS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로 넘어가는 시기였어요. 인터넷이라는 물결이 시작됐고, 닷컴이라는 단어가 시작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때 C언어와 C++ 언어를 본격적으로 접하고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흑백 허큘리스 카드에서 돌아가는 습작게임을 만들었죠. 이름이 \\\'독도는 우리땅\\\'이었더랬습니다. 그 당시에 우리나라의 PC게임산업은 블루오션이었고, 만들기만 하면 대박이 나는 시기였죠. 게임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데 횡스크롤 전투기 슈팅게임이 대박을 치기도 했습니다.

어느 정도 게임개발언어 공부가 된 저는 어떤 게임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했는데, 바로 입사시켜 주더군요


네오플에 언제, 어떤 계기로 입사했는지 궁금합니다.

= 네오플에 입사하게 된 계기는 앞서 이야기했던 저의 스승이자 선배가 권유해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입사해서 어쩌다 네오플을 나오시게 되었는데, 저보고 괜찮은 회사이니 지원해 보라고 하더군요.

그때 던파를 처음 해 보았는데 재밌더군요. 당시 MMORPG의 캐릭터는 단순 칼베기였어요. 던파처럼 그렇게 화려한 스킬을 사용하면서 액션을 가미한 게임은 처음이었어요. 저는 한눈에 \\\'대박인걸\\\'하고 생각했습니다.

2차 면접으로 허민 사장님을 만났는데, 저의 꿈을 묻더군요. 한동안 잊고 있었던 저의 꿈을요.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꼭 입사해야겠다. 이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입사하니 서버개발자가 나를 포함 4명이나 되더군요. 기존 개발자 2명과 저보다 일주일 먼저 입사한 1명의 개발자. 저는 \\\'할 만하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첫 출근 후 점심시간이 되어 서버개발자 4명이 밖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기존 개발자 2명이 회사에 대한 불만을 심하게 털어놓더군요. 그리고 알게 되었는데 퇴사예정이라는 거예요. 그래도 1명이 더 있으니 괜찮겠지, 하고 있었습니다. 일주일 뒤 나머지 한 명도 퇴사하겠다고 하더군요. 저 혼자가 맡게 되었더랬죠. 던파 서버를….

저는 나이가 많아서 갈 곳도 이제 더 이상 없었고요. 마지막 직장이라고 생각하고 결심하고 들어온 회사가 네오플이었고요. 그래서 끝까지 해 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당시 던파를 처음 기획했던 실장님과 연구소 소장님이 서버 개발을 도와주시더군요. 다행히요.


네오플 입사 초기에 어떤 일을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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